
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강릉 바닷가에 사는 아홉살 조카 서연이, 해먹에서 놀다가 갑자기 짖기 시작한다. 왕왕, 왈왈왈, 캉캉, 크앙크앙, 와릉와릉······ 산책길에 만난 이웃집 강아지 생각이 난 듯. 너무 오래 짖길래 한마디 한다. "목 아프지 않아?" "쉬잇. 지금 중요한 이야길 하는 중이에요." 한참을 더 짖어대는 인간 아이가 눈부시다. 저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홉살 열살 열한살, 어린 동생들과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바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싶어서 한없이 귀를 낮추던 때. 이윽고 귀가 물거품처럼 부풀고 공기방울의 말이 내 몸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나가면서 바다와 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던 신비한 순간들이. 오전 내내 짖는 조카를 보며 잘 늙어가고 싶은 어른으로 딱 한가지만은 하..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1 - 아무의 제국, 그 심드렁한 통치술 날마다 자라난다 광활한 용량만큼 빠른 속도로 이인칭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와 시간을 보내는 아무들 아무랑 놀고 아무에 묻고 아무에게 팔고 아무로부터 사고 아무를 베낀다 아주 바쁘게, 아주 뜨겁게 산책자도 없는 산책자들의 도시 아무가 바삐 오간다 아무를 손에 들고 아무에게 속삭이며 몸속에 심장이 없다는 걸 티 내지 않는다 종종 두뇌가 실종된다는 것도 오늘이 사라지는 속도만큼 아무의 영토가 커지고 아무의 밤은 날마다 융성하나니 --- 뭘 더 바라겠어요 잠시 사라지는 허기면 족하죠 아무 속에선 아무도 외롭지 않다 아무는 항상 바쁘기에 아무에게 불만을 가질 여유가 없다 아무랑 즐겁기에 아무에게 투정할 필요도 없다 어둡게 삼켜지는 아무의 시간 차갑게 식..

마스크에 쓴 시 7 - 거울이 말하기를 붉고 검은 반점들로 뒤덮인 대륙들, 그들은 의도 없이 출현했는데 인간은 폭로되고 있다. 멈춤, 잠시 멈춤, 폭로된 인간 사회가 멈칫거리는 동안, 인간에 의해 감금된 야생이 풀려났다. 더 오래 멈춰야 해. 그래야 살아. 너희만 빼고 다 아는 사실이야. 너희만 모르는 이유는 딱 하나지. 모르고 싶기 때문이야.(이 문장의 주어는 누구겠니?) 이 말의 거울은--- 알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이 문장의 주어는 누구겠니?) .까니이음죽 겐에본자 건 는다춤멈 우리만 감금당한 줄 아니? 너희는 스스로 감금되었어. 속도에. 자본에. 자본의 속도에. .희너 된독중 멈춤, 지금 멈춤, 더 오래 멈춤, 그렇지 않으면 지금보다 더 혹독한 전염병의 시대가 온다, 곧 다시 온다고 했다...

마스크에 쓴 시 2 걸식하던 때로 돌아가야 해. 공장형 축사, 유전자 변형 곡물, 생산성 우선주의, 비료 농약 항생제 온갖 촉진제, 도륙, 밀림과 숲을 밀어내고 들어선 대규모 농장들, 무엇이든 유행이 시작되면 투자가 폭증하고, 투자해 유행을 만들기도 하고, 돈이 돌기 시작하면 파괴는 시작되고, 팔리는 한 지구 끝까지, 제어 불가능한 덤블링, 궁극엔 황무를 향한, 지구적으로 소비되는 오늘의 유행, 마트에 그득한 오늘의 식자재들, 돈만 된다면 어디든지, 무엇이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지구를 서너개쯤 팔아치워도 끄떡 않을 자본의 탐욕, 과잉생산 과잉소비, 지구의 것을 파괴하면서 얻은 풍요의 뒤안, 우리가 발붙일 곳은 여기뿐인데, 머지않아 혹독하게 되갚아야 할 텐데, 내일의 아이들은 굶게 될 텐데, 생의 모든 ..

삶을 살아낸다는 건 다 왔다. 하늘이 자잔히 잿빛으로 바뀌기 시작한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마지막 잎들이 지고 있다. 허투루루. 바람이 지나가다 말고 투덜거린다. 엘리베이터 같이 쓰는 이웃이 걸음 멈추고 같이 투덜대다 말고 인사를 한다. 조그만 인사, 서로가 살갑다. 얇은 서리 가운 입던 꽃들 사라지고 땅에 꽂아논 철사 같은 장미 줄기들 사이로 낙엽은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밟히면 먼저 떨어진 것일수록 소리가 엷어진다. 아직 햇빛이 닿아 있는 피라칸사 열매는 더 붉어지고 하나하나 눈인사하듯 똑똑해졌다. 더 똑똑해지면 사라지리라 사라지리라, 사라지리라 이 가을의 모든 것이, 시각을 떠나 청각에서 걸러지며. 두터운 잎을 두르고 있던 나무 몇이 가랑가랑 마른기침 소리로 나타나 속에 감추었던 가지와 둥치들을 내놓는..

龍仁 지나는 길에 저 산벚꽃 핀 등성이에 지친 몸을 쉴까. 두고 온 고향 생각에 고개 젓는다. 到彼岸寺에 무리지던 연분홍빛 꽃너울. 먹어도 허기지던 三春 한나절. 밸에 역겨운 可口可樂 물냄새. 구국 구국 울어대는 멧비둘기 소리. 산벚꽃 진 등성이에 뼈를 묻을까. 소태같이 쓴 입술에 풀잎 씹힌다. - 민영 (창작과비평사, 1977) 화자는 용인 지나는 길에 산등성이에 피어 있는 산벚꽃을 보면서 '도피안사에 무리지던 / 연분홍빛 꽃 너울'을 떠올립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 철원에서의 기억은 결코 아름다움으로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지요. '피안의 세계에 다다른 절'인 도피안사를 곁에 두고 살았어도 '먹어도 허기지던' 보릿고개를 힘겹게 보냈던 아픔만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고향을 떠난 현재의 상황이 ..

그 옛날 음악 시간에 저마다 목청껏 불렀던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로 시작하는 박목월의 에 등장하는 그 목련을 교정에서 담아 봅니다. 는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노래라고 하는데, 해마다 이맘때쯤 목련을 볼 때마다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노래이지요. 사진에서 보이는 목련은 꽃의 세력이 다소 빈약한 듯 보이지만 그래도 봄의 감성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억지부려 봅니다. 4월의 노래 / 박목월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 목련꽃 그늘 아래서 긴 사연의 편질 쓰노라 클로바 피는 언덕에서 휘파람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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