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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강릉 바닷가에 사는 아홉살 조카 서연이, 해먹에서 놀다가 갑자기 짖기 시작한다. 왕왕, 왈왈왈, 캉캉, 크앙크앙, 와릉와릉······ 산책길에 만난 이웃집 강아지 생각이 난 듯. 너무 오래 짖길래 한마디 한다. "목 아프지 않아?" "쉬잇. 지금 중요한 이야길 하는 중이에요." 한참을 더 짖어대는 인간 아이가 눈부시다.
저런 때가 내게도 있었다. 아홉살 열살 열한살, 어린 동생들과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바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고 싶어서 한없이 귀를 낮추던 때. 이윽고 귀가 물거품처럼 부풀고 공기방울의 말이 내 몸으로 스르르 들어왔다 나가면서 바다와 대화하고 있다고 느껴지던 신비한 순간들이.
오전 내내 짖는 조카를 보며 잘 늙어가고 싶은 어른으로 딱 한가지만은 하지 않기로 한다. 네가 짖는 대신 개에게 사람의 말을 가르치면 되잖아, 이런 따위 말만큼은 하지 않는 걸로 시인 이모의 소임을 다하는 시간. 눈앞의 동심이 눈부셔 여름 아침이 투명하게 왈왈거린다.
-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2)
(사진 : 양양, 2018.04.21.)
인간이 세상의 주인인 것 같지만 그것은 인간의 착각일지 모른다.
순수한 동심은 인간도 그저 자연의 일부임을 본능적으로 아는데, 어른이 되면서 망각하고 만다.
인간 본위의 사고는 결국 인류의 종말을 초래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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