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지옥 ― 序詩 정신 없이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꿀벌 한 마리 나는 짓궂게 호박꽃을 오므려 입구를 닫아 버린다 꿀의 주막이 금세 환멸의 지옥으로 뒤바뀌었는가 노란 꽃잎의 진동이 그 잉잉거림이 내 손끝을 타고 올라와 가슴을 친다 그대여, 내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나가지도 더는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랑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난 지금 그대 황홀의 캄캄한 감옥에 갇혀 운다 - 유하 (민음사, 1993) (사진 : 양주 덕정, 2012.07.04) 따지고 보면 세상 일이란 다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더는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그리하여 몸부림칠수록 더욱 빨려 들어가는 개미지옥 같은 것을……
비 오는 사막 새벽 한 시, 속초 大浦(대포)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는 잠든 사막 같다 흐르는 물과 하늘의 뒤범벅 속에서 오징어잡이 배만 온통 유전의 불빛처럼 반짝이고 다가가는 모든 것들을 가로 눕게 만드는 저 노회한 수평선 마른 오징어를 질겅거리면, 길게 아픈 추억들에 구멍이 뚫려 밤바다가 통째로 씹힌다 사라져 간 날들이여 난 무엇을 얻으려 여기까지 왔는가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건 파도가 남긴 포말의 싸늘한 촉감뿐 멀리 일직선으로 내려꽂히는 번개가 바다의 정수리를 쪼갠다 후두둑 후회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내 머리 속 오징어떼 울부짖고 천길 심연 속에 깃든 이 물컹한 삶의 호흡들 비린내를 풍기며 엄습해 오는 그물의 세월아, 다 건져가라 건져가라 고통이 고통에게 손을 내밀 듯 바다는 빗줄기를 맞이하고, 마음..
눈 오는 날에 수북하게 쌓인 눈더미 위에 오줌을 눈다 내 강아지 같은 마음과 질투의 물줄기에 놀란 듯, 순식간에 자리를 비키는 눈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듯 자신을 거두어들이는, 어이쿠 雪雪(설설) 기는 듯한 자세를 취해주는 눈 눈이 펄펄 뜬 눈으로 내게 귀띔한다 *寵辱若驚(총욕약경), 사랑을 받으나 욕되나 늘 놀란 것같이 하라, 한다 내게 오는 사랑이 오줌 세례이기 마련인 줄도 모르고 아무 놀람 없이 여태까지 철판의 가슴으로 완강히 가두었으니, 내게 오는 오줌 줄기가 사실은 사랑인 줄 모르고 텅텅 튀겼으니 이 몸은 자기 몸이 아닌 석고상과 다를 게 무어냐? 세상의 온갖 영욕이 저 눈과 같아서 쌓이면 잃고, 흩뿌리듯 잃었다 싶으면 쌓일 것이니 오직 놀라고 놀랄 뿐이다 아아, 무디고무딘 똥고집의 내 몸이여 ..
나와 여치의 불편한 관계 비척비척 술기운의 발걸음을 멈춘 주택가 공터, 임시로 한살림 차린 호박덩굴 속에서 쯧쯧쯧쯧 침 튀기듯 달빛 튀기며 쯧쯧쯧쯧 여치란 놈이 열심히 혀를 차고 있다 나의 오줌 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뭐가 그리 개탄스럽다고 쯧쯧쯧쯧 혀를 차는 여치 한 도시 가운데서, 진저리치며 난 여치와 농경문화적으로 만났다 잠깐! 이곳에 방뇨하는 자는 그것을 잘라버리겠다 주인백 쯧쯧쯧쯧 - 유하 (문학과지성사, 1991) (사진 : 강원도 양양, 2011.10.02) 현대인의 삶은 인간을 향해 '쯧쯧쯧쯧......' 혀를 차는 여치만도 못한 것일지도 모르지요. '인위적 만듦[작위作爲]'이 빚어낸 우리 시대의 비극은 언제 끝을 볼지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오늘도 또 하나의 '만듦'을 추구하는 우리의 ..
약수를 길어오며 - 철화네 집, 벽제에서 새벽녘 약수를 주전자에 넣고 출렁출렁 산길을 내려왔다 까치가 눈앞에서 날아오르고 여지껏 내 생의 헛된 욕망의 소식들과 솔방울처럼 말라버린 기다림들이 푸르르 깃을 치며 떠올랐다 내 발걸음은 약수를 길어 산길을 내려오는 것만도 벅찬 호흡인데 산 위의 물은 어떤 절망의 터널을 뚫고 내려와 이렇듯 온전한 약수로 샘솟았는가 주전자의 벌린 입처럼 *해찰하며 냇물의 나른함으로 흘러내려온 내 삶의 버릇이 아깝게 자꾸 약수를 쏟게 했다 삶이라는 것도, 마음대로 출렁대며 내려오다보면 약수처럼 슬금슬금 쏟아져버린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난 차 한잔과 국물 한 사발이 더 필요했으므로 다시 오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까치 떼가 지금까지 걸어온 내 발길의 기억처럼 날아오르고, 난 다시 *..
내 마음의 고기 한 마리 - 양수리에서 늦가을 강바람 속으로 매순간 힘없이 메마른 숨결의 손을 놓는 나뭇잎들과 같이 지금 돌연 내가 죽어 없어진다 해도 저 강물은 계속 흐를 것이다 간혹 물 위에 떠가는 낙엽이나 갈대 부스러기처럼 내 죽음이 쓸쓸히 노을의 저편으로 흘러가도 강은 이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바로 눈앞으로 흐르는 강물이란 강물 다 지나가버려도 강의 호흡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듯, 영영 떠내려가버릴 것 같은 죽은 나뭇잎들 푸르름의 기억을 되살려 나무의 뿌리로 되돌아오듯, 내 육신의 죽음이 진정 나를 죽게 할 수 있을까 나는 본다, 벗어나려 해도 벗어나려 해도 그대로 온통 강물인 양수리의 삶을 뭐 하나 뾰족할 것 없는 생의 굴레를 하여, 살아온 날들의 온갖 희희낙락과 절망들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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