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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수를 길어오며
- 철화네 집, 벽제에서
새벽녘 약수를 주전자에 넣고
출렁출렁 산길을 내려왔다
까치가 눈앞에서 날아오르고
여지껏 내 생의 헛된 욕망의 소식들과
솔방울처럼 말라버린 기다림들이 푸르르
깃을 치며 떠올랐다 내 발걸음은 약수를 길어
산길을 내려오는 것만도 벅찬 호흡인데
산 위의 물은 어떤 절망의 터널을 뚫고 내려와
이렇듯 온전한 약수로 샘솟았는가
주전자의 벌린 입처럼 *해찰하며
냇물의 나른함으로 흘러내려온 내 삶의 버릇이
아깝게 자꾸 약수를 쏟게 했다
삶이라는 것도,
마음대로 출렁대며 내려오다보면
약수처럼 슬금슬금 쏟아져버린다는 걸 왜 몰랐을까
난 차 한잔과 국물 한 사발이 더 필요했으므로
다시 오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까치 떼가 지금까지 걸어온 내 발길의 기억처럼
날아오르고, 난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없는
내 삶의 산길을 생각했다
-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해찰하다
(1) 마음에 썩 내키지 아니하여 물건을 부질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려 해치다.
(2) 일에는 마음을 두지 아니하고 쓸데없이 다른 짓을 하다.(이 시에서의 의미)
* 거슬러 올라갔다 / 거슬러 올라갈 : 1991년판 시집의 원문에는 '거슬러올라갔다 / 거슬러올라갈'로 되어 있음
(사진 : 진주성, 2014.01.05. 27년 지기인 duta1012의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함)
내 살아온 삶의 길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걸어올 수 있는 길이 아니므로, 자꾸만 '출렁대며' 살아가는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그래야 정성스레 한 조각 한조각 맞추어 놓은 삶의 퍼즐 조각들이 그나마 덜 떨어져 나갈 텐데...... 어느 저문 날,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타는 입술을 축일 달콤한 물 한 모금과 바꿀 정도만큼이라도 뭔가가 남아 있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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