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에 / 유하

   눈 오는 날에

 

  수북하게 쌓인 눈더미 위에 오줌을 눈다

  내 강아지 같은 마음과 질투의 물줄기에

  놀란 듯, 순식간에 자리를 비키는 눈

  너그럽게 받아들인다는 듯

  자신을 거두어들이는, 어이쿠

  雪雪(설설) 기는 듯한 자세를 취해주는 눈

  눈이 펄펄 뜬 눈으로 내게 귀띔한다

  *寵辱若驚(총욕약경), 사랑을 받으나 욕되나

  늘 놀란 것같이 하라, 한다

  내게 오는 사랑이 오줌 세례이기 마련인 줄도 모르고

  아무 놀람 없이

  여태까지 철판의 가슴으로 완강히 가두었으니,

  내게 오는 오줌 줄기가 사실은

  사랑인 줄 모르고 텅텅 튀겼으니

  이 몸은 자기 몸이 아닌

  석고상과 다를 게 무어냐?

  세상의 온갖 영욕이 저 눈과 같아서

  쌓이면 잃고, 흩뿌리듯 잃었다 싶으면 쌓일 것이니

  오직 놀라고 놀랄 뿐이다

  아아, 무디고무딘 똥고집의 내 몸이여

  가자꾸나, 저 눈의 몸 가까이

  積雪(적설)의 몸이 되자꾸나

 

     - 유하 <바람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문학과지성사, 1991)

 

  *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13장에 나오는 구절로, 사랑 받음과 욕됨을 놀라는 듯이 받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사진 : 강원도 양양, 2015.01.28)

 

  눈 오는 날, 눈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노자의 도덕경을 활용하여 표현하고 있는 시입니다. 성인군자의 귀한 말씀을 우리 같은 범인(凡人)들이 어찌 다 이해할 수 있을까마는, 그래도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는 눈의 이미지는 마치 고은 시인의 <눈길>에서의 그것과 의미가 상통하는 것도 같습니다. 지나온 모든 부정한 것들을 감싸 안고 덮어버림으로써 포용과 관용, 사랑을 실현하는 바로 그 '눈'의 숭고함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우린 '내게 오는 오줌 세례'가 사랑인줄도 모르고, '내게 오는 사랑'이 오줌 줄기인지도 모른 채 어리석은 '석고상'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무더위가 스멀스멀 온몸으로 기어오르고 있는 요즘, 한겨울에 내리는 새하얀 눈이 그리워집니다.    

 

  참고로 노자의 도덕경(道德經) 13장 '寵辱若驚(총욕약경)'편을 따로 옮겨 봅니다.

 

  寵辱若驚(총욕약경) 사랑 받음과 욕됨을 놀라는 듯이 받아들여라.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 큰 근심을 내 몸과 같이 귀하게 여겨라.

  何謂寵辱若驚(하위총욕약경) 사랑 받음과 욕됨을 놀람과 같이 받아들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寵爲下(총위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하찮은 것이다.
  得之若驚(득지약경) 얻을 때도 놀라는 듯이 하고,
  失之若驚(실지약경) 잃을 때도 놀라는 듯이 하라.
  是謂寵辱若驚(시위총욕약경) 이러한 것을 일러 사랑 받음과 욕됨을 놀라는 듯이 받아들이는 것이라 한다.

  何謂貴大患若身(하위귀대환약신) 큰 근심을 내 몸과 같이 귀하게 여기라는 것은 무엇을 말함인가?
  吾身所以有大患者(오신소이유대환자) 내 몸에 큰 근심이 있는 까닭은
  爲吾有身(위오유신) 내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及吾無身(급오무신) 내게 몸이 없다면,
  吾有何患(오유하환)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故貴以身爲天下(고위이신위천하자) 그러므로내 몸을 귀하게 여기듯 천하를 위하는 사람에게는
  若可以寄天下(약가이기천하) 가히 천하를 줄 수 있고, 
  愛以身爲天下者(애이신위천하자) 내 몸을 사랑하듯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若可以託天下(약가이탁천하) 가히 천하를 맡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