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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정처 없이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구름처럼 부풀어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 공기가 이별의 늴리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 최승자 <즐거운 日記> (문학과지성사, 1984)
* 원문에는 '쥐도새도모르게'로 되어 있음
(사진 : 양주 삼숭동, 2015.01.05)
화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괴로움이 독자에게로 곧바로 전이되어버릴 것만 같다. 제 자리를 찾지 못하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가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는데, 과연 어디에서 삶을 지탱해 나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과연 어디에서 내가 삶을 지속해야 하는 핑곗거리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시는 죽음의 시다. 그리하여 죽음을 찬미하는 시다. 그러나...... 그렇게 끝낼 수만은 없지 않은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칼바람이 지나면, 어느 순간 꽃이 피고 새가 우는 봄날이 오고, 무성한 녹음의 계절을 뒤로하고 낙엽이 지고 열매 맺는 가을이 오듯이 그렇게 삶은 살아지는 것이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한 것이 삶의 속성인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삶이라 할지라도, 그 빌어먹을 삶의 의미라는 것이 어느날 문득, 문득, 도처에서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하기도 하는 것!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보면 방긋방긋 웃음 웃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지 아니한가? 최승자의 시에 자꾸 빠져버리면 삶이 자꾸만 어두워질 것만 같다. 놓아주자. 이제 그만 타오르는 태양빛 속으로 뛰어들자......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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