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고요한 사막의 나라
만리동 다리 위에서 삼십 세의 인생은 눈이 멀어 헤맨다.
지하도에 빠지고 육교 위로 불려 가고 모든 정치적 경제적 사랑은
어질어질하므로 황홀하다. 철새는 날아가고 사회적 문화적
애인은 비명횡사한다. 개새끼 잘 죽었다, 너 죽을 줄 내 알았다.
오늘도 암스테르담엔 노란 햇빛 비치고 플로렌스에선 그리운
꽃들이 피어난다. 언제나 가 볼 수 있을까 죽음다운 죽음이 환히
비치는 곳으로 너의 웃음이 시원한 사이다 한 잔으로 쏟아지고
우리의 고질적인 사랑이 영화처럼 쉽게 끝났다가 심심하면
또 영화처럼 쉽게 시작될 수 있는 곳으로.
한참 걸어가다 보면 멀쩡한 두 발이 해진 신발짝으로 변하고
평생토록 내가 끌던 소달구지에 이제 내 시체가 실려 나갈
고요한 사막의 나라가 아닌 곳으로
그러나 모래의 고장에선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는 법, 언제나
있는 것만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보이지 않게 먼지들은 하늘 끝까지 쌓여 가고
한밤이 지나도 다른 한밤이 오지 않는다.
사람들은 무덤 속에서 뜬눈으로 돌아눕고
새벽은 법에 걸려 돌아오지 못한다.
우리들의 발은 일 피트 높이에서 영원히 땅에 닿지 못하고
오른손은 영원히 왼편에 닿지 못한다.
(그리고 고요한 사막의 나라에선 세월이
흘러가는 게 아니라 앞에서 쳐들어온다,
야비하게 복병한 죽음을 싣고서.)
- 최승자 <즐거운 일기> (문학과지성사, 1984)
(사진 : 양주 천보산, 2015.01.04)
최승자의 시편들은 읽기 힘들다.
차라리 고통스럽다.
시를 읽으면서 시적 화자와 정서적 교감을 나누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읽는 내내 시어들의 의미들을 헤아리느라 고심하다 보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마음으로 받아들이기엔 심장이 너무나 아프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삶의 수레바퀴에 깔려
세월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고, 과연 세월이 가기는 하는 걸까?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 보면
세월은 어느새 저만큼 훌쩍 흘러가 버렸는지 그 꼬랑지조차 보이지 않고......
새벽은 밝아올 기미도 없다.
어둠!
사막과도 같은 그 어둠 속에서 삶을 헤매는
1980년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와 방황이 처절하지 아니한가?
'시가 있는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 최승자 (0) | 2015.06.29 |
---|---|
언젠가 다시 한번 / 최승자 (0) | 2015.06.29 |
꿈 대신에 우리는 / 최승자 (0) | 2015.06.29 |
벌집 속의 달마 / 김선우 (0) | 2015.06.22 |
대관령 옛길 / 김선우 (0) | 2015.06.04 |
- Total
- Today
- Yesterday
- 곰버섯
- 소매물도
- 싸리꽃
- 버들하늘소
- 산수유
- 강원FC
- 애사당 법고놀이
- LG twins
- 최영미
- 나리공원
- 갈매기
- 양주별산대놀이
- 구절초
- 유하
- 최승자
- 매화
- 광화문광장
- 창경궁
- 송이
- 포도부장놀이
- 조용미
- 낙산사
- 벚꽃
- 내 따스한 유령들
- 감
- 창덕궁
- 류근
- 봉선사
- 김선우
- 정호승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