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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밤부엉이 / 최승자

꿈꾸는 무인도 2015. 6. 29. 18:37

   밤부엉이

 

  밤부엉이 한 마리가 창가에서

  나를 꼬나보기 시작했어.

  나는 허둥거리며 내 몸의

  모든 기관들을 닫아 버렸지만

  부엉이의 눈빛이 오토머신처럼

  내 몸 구석구석을 헤집어 열고

  노란 방사선을 쏘아 부었어.

  나는 사지를 늘어뜨린 채

  천천히, 차갑게 용해되어 갔어.

 

  이윽고 잠, 닫혀진 회색 강철 바다,

  속으로 한 사내의 그림자가 숨어들어

  내 꿈의 뒷전을 어지러이 배회하고

  환각처럼 흔들리는 창가에서, 누구시죠?

  내게 희미한 두통과 고통을 흘려 붓는, 누구시죠?

  내 사산(死産)의 침상에 낮게 가라앉아,

  누구시죠? 누구 누구 누구?

 

  밤부엉이가 밤새 내 지붕을 파먹었어.

  아침엔 날이 흐렸고

  벌어진 큰골 속으로 빗물이 뚝뚝 흘러들었어.

  이미 죽은 내 몸뚱이 위에

  누군가 줄기차게 오줌을 깔기고,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떠나갔어.

 

    - 최승자 <즐거운 日記> (문학과지성사, 1984)

 

 

 

  (사진 : 강원도 양양, 2015.05.04)

 

  이제 진짜 마지막이다. 최승자의 시...... 는 너무 아프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밤에 듣던 부엉이 울음 우는 소리는 그렇게도 처연하기만 했다. 무섭다기보다는 심장을 후벼 파는 듯한 애절함으로 다가왔다. 휘잉 휘잉 불어대는 날카로운 겨울바람 사이로 부엉부엉 끊임없이 울어대는 신비로운 그 울음소리는, 시골집의 허술한 문틈으로 스며드는 차가운 웃풍을 피해 머리 끝까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는 산골 소년의 마음을 온통 슬픔으로 가득 채워놓곤 했다. 어찌보면 내 슬픔의 근원은 바로 부엉이의 울음 소리인지도 모를 일이다. 산에서 데려와 애지중지 기르던 새끼 부엉이를 잃은 상실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는 억지스런 핑계를 대지 않더라도, 한겨울밤에 듣던 부엉이 울음 소리는 산골 소년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즐거운 日記>를 내려놓아야겠다. 아픔을 내려 놓아야겠다. '노란 방사선'과도 같은 부엉이의 눈빛과 더불어......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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