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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사막
새벽 한 시, 속초 大浦(대포)에서 바라보는
동해 바다는 잠든 사막 같다
흐르는 물과 하늘의 뒤범벅 속에서
오징어잡이 배만 온통 유전의 불빛처럼 반짝이고
다가가는 모든 것들을 가로 눕게 만드는
저 노회한 수평선
마른 오징어를 질겅거리면,
길게 아픈 추억들에 구멍이 뚫려
밤바다가 통째로 씹힌다
사라져 간 날들이여
난 무엇을 얻으려 여기까지 왔는가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건
파도가 남긴 포말의 싸늘한 촉감뿐
멀리 일직선으로 내려꽂히는 번개가
바다의 정수리를 쪼갠다
후두둑 후회처럼 쏟아지는 소낙비
내 머리 속 오징어떼 울부짖고
천길 심연 속에 깃든 이 물컹한 삶의 호흡들
비린내를 풍기며
엄습해 오는 그물의 세월아,
다 건져가라 건져가라
고통이 고통에게 손을 내밀 듯
바다는 빗줄기를 맞이하고,
마음이 끝내 쓰라린 소금기를 남기는 곳에서
나는 본다, 입을 쩍 벌린 채
허공에 매달린 내 육신의 건어물을
- 유하 <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 1993)
(사진 : 양양 하조대, 201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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