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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5일 토요일, 오늘의 두 번째 이야기는 춘당지(春塘池)에서 이어집니다.
명정전에서 나와 춘당지로 이어지는 길은 그야말로 햇빛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숲길입니다. 단풍철도 이미 때가 늦어 퇴색한 갈색 잎들만 가득하지만, 가끔은 가을날 오후의 강한 햇살을 받아 붉은 자태를 뽐내는 단풍나무도 만날 수 있습니다.
춘당지 앞에는 이미 인파로 북적거립니다. 깊어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듯 뒤늦게 절정을 맞이한 단풍나무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춘당지의 연못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지금 보이는 큰 연못은 원래 내농포(內農圃)가 있던 자리로 임금이 궁궐 안에서 직접 농사짓는 경험을 하는 곳이었다고 하지요. 1907년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과 식물원으로 바꿀 계획을 세우면서 일본식 정원으로 꾸미기 위해 내농포의 흙을 퍼내고 조성한 연못이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우리의 전통양식에 가깝게 다시 바꾼 것이라고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식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색을 달리하는 능수버들이 연못에 고개를 숙이고 늘어져 있습니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미풍으로 그만 물결이 일렁이는 통에 완벽한 반영(反映)이 나타나는 이미지는 얻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얼추 비슷해 보이기는 합니다.
사진 오른쪽에 흰색 몸통을 보이는 나무들은 백송(白松)입니다.
연잎인지 아니면 다른 수초인지 수면에 퍼져 있는 식물들이 많아 섬 그림자가 제대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계속하여 셔터를 눌러 봅니다. 향나무의 녹색 잎과 단풍나무의 붉은 잎이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가운데 보이는 백송의 동그스름한 수형(樹形)에 자꾸 시선이 머물게 됩니다.
춘당지 너머로 보이는 서울대병원과 그 외 현대식 빌딩들이 여전히 눈을 피로하게 합니다. 그 옆을 보니 타워크레인이 설치되어 있네요. 이번에는 또 어떤 건물이 들어서서 경관을 망쳐 놓을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시야들 돌려 보아도 저놈의 시멘트 덩어리들이 자꾸만 방해합니다.
이곳은 수생식물도 없고 시멘트 건물도 보이지 않지만, 대신 단풍의 색감이 화려하지 않습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작은 연못이 원래의 춘당지로서 백련지(白蓮池), 백련담(白蓮潭) 등으로 명명한 기록도 있다고 하니 예전에는 연꽃으로 가득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랫쪽에 만들어진 춘당지에 비하면 규모가 많이 작지만 아늑한 느낌이 들어 더욱 운치가 있어 보입니다.
큰 연못과 작은 연못 사이에 이상하게 생긴 돌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탑은 일제가 창경궁 내에 이왕가박물관(李王價博物館)을 만들 때, 만주(滿洲)에서 들여와 소장하고 있던 골동품상(骨董品商)으로부터 매입하여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라마식 탑으로 탑신에 적인 명문(銘文 - 새겨놓은 글)을 확인한 결과 중국 명나라 때인 1470년에 요양성(遼陽城)에 세워진 것이라고 합니다.
만주땅에 있던 것이라 중국풍과 라마풍이 이종교배된듯 생뚱맞은 형상이 낯설기만 한데, 그것이 다른 곳도 아닌 우리의 궁궐에 위치하고 있어 분위기를 더욱 해치고 있지나 않은지 우려됩니다. 유홍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이 탑은 여기를 떠나 박물관의 야외 전시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데, 이 석물을 받아줄 박물관도 없다고 하니 말 그대로 계륵(鷄肋)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춘당지를 돌면서 서쪽의 창덕궁 방향을 보니 오후의 가을 햇살과 노란 나뭇잎, 그리고 고목의 실루엣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조화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1909년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온실이라고 합니다. 대온실은 창덕궁에 거처하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일본인들이 창덕궁에 인접한 곳에 동물원과 함께 지었다고 하네요. 일본인이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완성하였으며, 철골구조와 목조가 혼합된 구조체를 유리로 둘러싼 서양식 온실이라는데...... 온실 앞의 반송(盤松)은 참으로 멋져 보입니다.
준공 당시에는 열대지방의 관상식물을 비롯한 희귀한 식물을 전시하였다고 하는데, 1986년 창경궁 복원 이후에는 국내 자생 식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온실 건물은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굳이 문화재로까지 지정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일제의 잔재를 청산하여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자는 의견과 존치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의견이 공존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불행한 역사도 역사의 일부라고도 하지요. 다만, 경복궁에서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것처럼 상황과 맥락에 맞는 현명한 선택이 필요해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공터는 대온실 바로 옆인데, 예전에는 이곳 일대에서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과 시험이 치러졌다고 합니다.
춘당지 주변을 돌며 가을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단풍잎을 골라서 담아 봅니다. 이런 곳은 어김없이 인파가 붐벼서 사진 찍을 차례를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지요.
이 장면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않는 순간을 기다렸다가 구도를 생각할 틈도 없이 잽싸게 포착한 것입니다.
껍질이 흰 소나무, 백송(白松)입니다. 이 녀석을 촬영할 때에도 인파가 붐벼 전체적인 수형을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내 춘당지를 한바퀴 돌고 영춘헌 뱡향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서울 도심에서 이와 같이 아름다운 가을 풍경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창경궁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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