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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

영정중월(詠井中月) / 이규보

꿈꾸는 무인도 2013. 10. 16. 11:07

 

 

  

    영정중월(詠井中月)

 

   山僧貪月色(산승탐월색) 산에 사는 스님이 달빛을 탐내                    

   幷汲一甁中(병급일병중) 병 속에 물과 달을 함께 길었네          

   到寺方應覺(도사방응각) 절에 돌아와 응당 깨달을 것이니                       

   甁傾月亦空(병경월역공) 병을 기울이면 달도 따라 비게 된다는 것을  

    

 

 

  고려시대의 대문호인 백운거사(白雲居士) 이규보(李奎報, 1168~1241)의 절창(絶唱)입니다. 깊은 산속의 고즈넉한 절간을 배경으로 우물에 비친 달이 지닌 아름다움과 그것을 탐하는 스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불가의 공(空) 사상을 바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헛된 욕망의 부질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우석대 문예창작과 송준호 교수는 아래와 같은 평을 남겼습니다.

 

  산에 사는 스님이 병을 가지고 우물물을 뜨러 갔는데 우물에 떠 있는 달빛이 하도 고와서 달빛을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리하여 달빛이 들어 있는 우물물을 조심스럽게 떠서 병에 담았다. 그러나 그 욕심 많은 스님은 절에 가서 동이에 물을 부으면 깨닫겠지. 병을 기울여 물을 따르면 병 속이 텅 비는 것과 동시에 달빛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 시 또한 기발한 착상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깨달음이 시적 주제이다.

  밝은 달밤이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 우물 속에는 그것이 비치고 있다. 시인은 산스님이 물을 긷는 것을 보고 달빛을 긷는다고 표현했다. 그것도 스님이 달빛에 취해서 그것을 욕심내고 있다고 했다. 달빛 비치는 공간도 아름답고 그것을 욕심내는 스님의 마음도 아름답다. 그러나 시인은 또 말한다. 아마도 그 물을 가지고 절에 가서 병을 기울이면 그 속에 들었던 달이 없어진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스님이 소중하게 욕심내었던 것은 물이 아니라 달이었다. 그러므로 스님은 자신이 가졌다고 믿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는 것이 이 시의 내용이다.

  실은 작자가 산 속의 우물에 뜬 달을 보고 시를 쓴 것인데, 시적 주체를 산스님으로 바꾸어 거기에 깨달음이라는 철학적 깊이를 담고 있다. 여기서의 주제를 담은 시어는 색(色)과 공(空)이다. 색을 탐한 스님이 달빛을 통해 공을 깨우친다는 선가적(禪家的) 주제가 담겨 있다. 불가에서는 모든 현상을 공(空), 곧 헛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물물에 비친 달빛은 바로 허상이고 하늘에 뜬 달이 진짜이다. 스님은 물에 비친 달이 탐나서 가져왔으나 물을 따르고 난 다음 없어진 것을 보고 비로소 자신이 보았던 현상이 헛된 것, 곧 공(空)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달빛을 탐한 것이 탐욕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것부터 시적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설정인데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이 공이라는 심오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작품에서는 아직 색공(色空)의 진리에 몽매한 채 있는 산스님을 등장시키고 그 몽매를 깨우치는 시적 화자를 내세워서 시적 해학미도 함께 살려내고 있다.  ― 송준호『한국명가한시선Ⅰ』(문헌과 해석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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