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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의 초상2

소요산 자재암

꿈꾸는 무인도 2021. 4. 5. 22:37

 2021년 4월 4일, 일요일입니다.

 코로나 여파가 계속되는 가운데 정말 오랜만에 카메라 가방을 둘러매고 길을 나섰습니다.

 오늘 목적지는 동두천 소요산 자재암입니다.

 

 

 산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자재암 일주문까지 천천히 봄빛을 음미하며 걸어오는 길이 참으로 좋습니다. 계곡의 청량한 물소리와 더불어 활짝 핀 벚꽃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나무로 깎아놓은 다람쥐 조각상이 보는 이를 미소짓게 합니다.

 

 

 

 

 

 

 소요산 자재암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로 유명하지요. 원효폭포의 모습을 옮겨 봅니다. 지난밤에 내린 봄비로 인해 수량이 평소보다 많아 폭포가 폭포처럼 보여 보기에 좋습니다.

 

 

 원효폭포 앞에 원효굴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원효굴 위쪽의 수직 절벽에선 외출 나온 미군 병사들이 암벽 등반을 하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지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암벽 등반이 아니라 로프를 타고 낙하하는 모습이었지요. 그런데 이렇게 원효굴을 조성해 놓아 그런지 이젠 그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20여 년 전, 연천의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요즘은 '동아리활동'이라고 하지만 그때는 '클럽활동'이라 했었지요. 등산반을 맡아서 소요산이나 도봉산, 수락산, 감악산 등등 인근 산들을 참 많이도 다녔었지요. 시골 아이들이라 그런지 험한 산길을 군말 없이 잘도 따라오곤 했었습니다. 몸이 힘든 활동을 좀처럼 하지 않으려 하는 요즘 아이들하고는 많이 달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는 토요일에 클럽활동을 했는데, 등산반은 토요일 일과가 끝나는 13시까지 일정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음에도 많은 아이들이 지원하여 활동을 열심히도 했었지요.   

 

 

 

 

 버스를 타고 전곡 읍내까지 나온 후 기차를 타고 소요산역에서 내린 다음, 사진에서 보이는 3코스를 돈 후 다시 전곡까지 버스나 기차로 이동하는 일정을 수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괴로움을 알고,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알고, 괴로움을 완전히 소멸시킴을 알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마음의 해탈과 지식의 해탈을 이루어 윤회에서 벗어나 태어남과 늙음의 괴로움을 받지 않는다. (숫타니타파 중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마라. 미운 사람과도 만나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법구경)

 

 

 애욕에 따라 일어나는 저 좋게 보이는 겉모양을 버리고, 이 몸은 무상(無常)한 것임을 가슴에 새겨서 마음을 하나로 통일하라.(숫타니타파)

 

 

 원효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일주문의 모습입니다. 산속이라 그런지 아직 봄빛이 덜 느껴집니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참선하던 곳이라고 하여 '원효대'라 명명된 곳이지요.

 

 

 청산은 나를 보고 말 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자재암 절집이 위치한 곳의 자연경관은 빼어나지만, 험준한 절벽 밑의 협소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탓에 절터 자체가 비좁고 산행객들의 왕래가 잦아 아늑하면서도 고요하고 산사의 분위기를 자아내기에는 다소 부족합니다.

 

 

 

 

 자재암 대웅전의 좁은 마당 바로 앞에는 멋진 폭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폭포의 진면모를 카메라에 옮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 폭포 역시 간밤 내린 비의 영향으로 수량이 풍부해 평소의 졸졸 떨어지는 물줄기에 비해 웅장해 보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자재암의 유래를 쉬운 말로 수정하여 옮겨 봅니다.

 

 원효대사는 요석공주와의 인연이 있은 후 오로지 수행을 위한 생각으로 인적이 두절된 심산유곡(深山幽谷 - 깊은 산 으슥한 골짜기)을 찾아 산자수명(山紫水明 - 산색이 아름답고 물이 맑음)한 아름다운 이곳에 이르러 초막을 짓고 용맹정진(勇猛精進 - 용맹한 기운으로 정성들여 불도를 닦음)하여 높은 수행을 쌓았다.

 비가 내리는 어느날 깊은 밤에, 약초를 캐다가 길을 잃은 아녀자로 화현(化現 - 모습을 변하여 나타남)한 관세음보살이 원효 스님에게 하룻밤 쉬어 가기를 청하며, 오로지 중생구제(衆生救濟求)라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행하는 원효의 심지(心志 - 마음에 품은 의지)를 시험하였다.

 이에 원효대사가 이르기를 "심생즉종종법생( 心生則種種法生)이요 심멸즉종종법멸(心滅則種種法滅)이라. 마음이 생기면 옳고 그르고, 크고 작고, 깨끗하고 더럽고, 있고 없는 가지가지 모든 법이 생기는 것이요, 마음이 없어지면 상대적 시비의 가지가지 법이 없어지는 것이니, 나 원효에게는 자재무애(自在無碍 - 생각이나 행동에 막힘이 없고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의 참된 수행의 힘이 있노라." 하였다.

 이에 그 여인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사라졌다. 원효대사는 사라진 여인이 관세음보살의 화현임을 알았고 그후 지극한 정진으로 더욱 깊은 수행을 쌓았으며 후학을 교계(敎誡 - 가르치고 훈계함)할 생각으로 정사(精舍 - 승려가 불상을 모시고 불도를 닦으며 가르침을 펴는 집)를 지었다.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는 뜻에서 정사를 이름하여 자재암(自在庵)이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한전(羅漢殿) 오른쪽에는 암반수(약수)가 흘러내려 길손의 갈증을 풀어주고 있습니다.

 

 

 

 

 해우소 근처에는 오래된 돌배나무가 꽃을 피워 올렸습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30대의 나이에 이른 원효는 '누가 나에게 자루 없는 도끼를 빌려주면, 그것으로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아 만들겠노라.' 는 내용의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고 합니다. 서라벌 거리의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노래를 부르게 시켰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결국 노래는 신라 29대 태종무열왕의 귀에까지 이르렀고, 무열왕은 생각한 바가 있어 자신의 딸인 요석(搖石)공주와 원효가 짝을 이루게 합니다. 그리하여 결국 대유학자이자 이두문자의 체계를 완성한 설총(薛聰)이 태어나게 되었다고 하지요. 그 후 원효는 파계승이 되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이곳 소요산에 머물며 수행에 전념하였고, 요석공주는 아들 설총을 데리고 산 아래에 머물며 원효가 수행하는 원효대를 향해 아침 저녁으로 예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 소요산에는 원효대, 원효폭포, 공주봉 등의 지명이 남게 되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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