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사는 일 / 나태주

꿈꾸는 무인도 2016. 9. 6. 13:32

    사는 일

 

  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

  굽은 길은 굽게 가고

  곧은 길은 곧게 가고

 

  막판에는 나를 싣고

  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

  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

  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

  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

  만나지 못할 뻔했던 싱그러운

  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

  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

  물총새, 쪽빛 나랫짓도 보았으므로

 

  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

  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

  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

 

    - 나태주 <너도 그렇다> (종려나무, 2009)

 

 

 (사진 : 강원도 양양, 2016.08.05)

 

 지난 여름, 양양에서 물총새를 보았습니다. 위의 시에서처럼 해가 저물 무렵은 아니었습니다. 폭염경보가 발령된 날의 뜨거운 오전이었지요. 무더위를 피하려고 잠시 시골집 앞 냇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만난 녀석이 바로 물총새였습니다.

 그래요.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예기치 못한 고난에도 불평하지 않고, 그런 상황을 묵묵히 수용하다 보면 때론 뜻하지 않은 행운을 만나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 '싱그러운 바람'을 만나다 보면, 비록 맛은 별로이지만 '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를 보기도 하고...... 그리고 정말 운이 좋다면 '고기비늘을 찍으러 온 물총새'의 신비로운 쪽빛도 예기치 않게 만나기도 하겠지요. 어쩌면......

 물총새의 쪽빛 색감은 보는 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합니다. 사람에 대한 느슨한 경계심도 녀석의 장점이지요. 그래서 거의 30여 분 동안이나 한 자리에 앉아서 녀석을 렌즈에 마음껏 담을 수 있었지요. 

 그런가 봅니다. 지나가 버린 버스를 탓하기보다는 다소 당혹스러운 상황이지만 그래도 마음을 추슬러 묵묵히 걸음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그 무엇...... 그 무엇에 대한 수용적인 마음가짐이 우리네 고단한 삶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