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녘의 백로
2016년 2월 9일 화요일, 설 다음 날입니다. (이번 설에는 고향에 가지 않고 안산 누님 댁에 오신 어머니를 뵙고 오늘 돌아왔던 것이지요.) 오후에 세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앞의 들판에 자전거를 타러 나갔습니다. 한적한 농로는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어서 자전거를 타기에 정말 좋았습니다. 녀석들은 자전거를 타고, 아이들 아빠는 카메라를 둘러메고 휘적휘적 걸으며 주변 풍경을 구경했습니다.
찬바람이 불어 약간 쌀쌀한 날씨였지만, 녀석들은 차 한 대 다니지 않는 농로에서 신나게 자전거를 타며 시원한 바깥바람을 쐬었지요. 그때 문득 시야에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들어왔습니다.
우아한 몸짓으로 겨울 하늘을 선회하는 새하얀 백로를 보게 된 것입니다.
근처의 전봇대 위에는 황조롱이로 보이는 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살피고 있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농로 옆에는 천보산에서 흘러오는 수로가 있는데, 겨울 추위에도 얼지 않아서 백로가 먹이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였습니다. 백로는 근처 수로에 내려앉아 여유 있는 우아한 걸음으로 먹이를 찾는 것처럼 어슬렁거렸습니다. 가까이 다가가 녀석의 모습을 렌즈에 담아 보았습니다.
바람에 날려와 수로에 처박힌 검은색 우산과 백로의 새하얀 빛깔이 묘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수로 주변엔 얼음이 약간 얼어 있었지만 녀석이 먹이를 찾기엔 지장이 없어 보였습니다.
백로는 여름 철새인데 이젠 겨울에도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새가 되었지요. 여름철에는 부리가 검은색이지만 겨울에는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노란색으로 변한다고 하네요.
녀석은 자전거를 타는 우리 아이들과 사진을 찍는 멋진 아저씨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듯 제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녀석과의 거리가 10m도 되지 않았지만, 녀석은 동요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도 가만히 서서 녀석을 지켜보기만 했지요.
백로가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서 한참을 기다려 보았습니다. 그런데 녀석은 먹이 사냥보다는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긴 했나 봅니다.
잠시 후 녀석이 날아올랐습니다.
커다란 백색 날개를 활짝 펼치고는 멋진 날갯짓으로 우아한 비행을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는 다른 개체에게로 다가서는 것으로 보였는데......
무엇에 놀랐는지 두 녀석이 함께 날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놈은 금방 수로에 내려앉았지만 녀석은 비행을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올랐습니다.
삭막한 겨울 들판에서 바라보는 백로의 날갯짓은 우아함 그 자체였습니다. 가까이에서 본 백로는 생각보다 몸집이 커 보였고, 녀석의 커다란 날개에서 '휙~ 휙~'하는 바람 소리도 들렸지요. 우리 아이들은 와~ 하는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눈과 부리 사이에 연록색 빛이 감도는 것이 더욱 신비롭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낮게 수로 주변을 날더니 잠시 후 하늘 높이 떠서 주변을 선회하였습니다. 아무래도 사람이 근처에 있는 것이 불안했나 봅니다.
아무래도 녀석의 먹이 활동을 방해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우리는 자리를 옮겼습니다.
잠시 후 한참을 앞서 가던 1호가 되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재미있는 것이 있다며 빨리 가 보자고 재촉했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근처 농가에서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첫째가 우연하게 '따르릉'하는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며 지나가는데, 그 소리에 놀란 닭들이 후다닥 도망갔다가 금방 칠면조 두 마리를 대동하고 당당하게 다시 1호 앞으로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혹시나 싶어 1호가 다시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자 그 소리에 반응하여 칠면조 두 마리가 경계하는 소리를 내더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2호와 3호가 칠면조 앞에서 연신 자전거 벨소리를 울리고 있었고, 칠면조들이 독특한 소리로 울어대면서 온 몸의 깃털을 부풀리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다며 자꾸 벨소리를 내는 아이들을 달래서 길을 다시 재촉했지요.
그런데 생각할수록 '꽈르르르~ 꽈르르르~' 들려오는 칠면조의 울음소리가 우스꽝스러워서 아이들과 같이 한참을 웃었지요. 칠면조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녀석의 외모와 울음소리가 참 못나 보였지요. 그건 아마 낯섦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가까이에서 자주 접할 수 있었다면 그런 느낌은 없었을지도 모르지요. 세상 살아가는 일도 다 그렇겠지요.
오늘은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도 타고, 겨울 백로의 우아한 비행도 보고, 칠면조의 흥미로운 울음소리도 들으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