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魚飛山 / 조용미

꿈꾸는 무인도 2015. 11. 5. 21:37

   *魚飛山(어비산)

 

 

  물고기의 등에 산이 솟아올랐다

  등에서 산이 솟아오른 물고기는 幀畵(탱화) 속에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 속의 물고기는 날개를 달고 있었다

 

  탱화 속의 물고기를 나는 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커다란 산을 지고 물 속을 떠다녔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도 등에 돋아난 죄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魚飛山에 가면 물고기들이 날아다녔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산에 가는 것을 미루다 물고기의 등을 뚫고 나온 사리를 본다 물고기는 뼈를 삭여 제 몸 밖으로 산 하나를 밀어내었다

 

  날아다니는 물고기가 되어 세상을 헤매고 다녔다

  비가 쏟아져내리면 일만 마리 물고기가 산정에서 푸덕이며 금과 옥의 소리를 낸다는 *萬魚山과 그 골짜기에 있는 절을 찾아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일만 마리 물고기떼의 적멸, 폭우가 쏟아지던 날 물고기들이 내는 장엄한 풍경소리를 들으며 *만어사의 옛스님은 열반에 들었을 것이다.

 

  탱화 속의 물고기와 어비산과 만어사가 내 어지러운 지도 위에 역삼각형으로 이어진다

  등이 아파오고 남쪽 어디쯤이 폭우의 소식에 잠긴다 *萬魚石 꿈틀거리고 눈물보다 뜨거운 빗방울은 화석이 된다

 

    - 조용미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 (창작과비평사, 2000)

 

 

   (사진 : 천보산에서 바라본 고읍동 풍경, 2015.11.01)

 

  * 어비산(魚飛山) : 경기도 가평군과 양평군에 걸쳐 있는 해발 828m의 산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로부터 홍수가 났을 때 물고기들이 산을 뛰어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두 가지의 전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산이 북한강과 남한강 사이에 위치하여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면 일대가 잠기게 되었는데, 계곡에 살던 물고기들이 산을 뛰어넘어 본류인 한강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어비산(魚飛山)'이라 불렀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하나는, 옛날에 신선이 한강에서 낚시로 고기를 잡아 가평의 설악면으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다가 잠시 쉬고 있었는데, 망태 속에 담겨 있던 고기가 갑자기 뛰어오르면서 유명산 뒤쪽에 있는 산으로 날아가 떨어졌다고 하여 그 산을 어비산이라 부른다는 것입니다.

 

  * 만어산(萬魚山)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과 삼랑진읍에 걸쳐 있는 해발 670m의 산입니다. 통도사의 말사인 만어사(萬魚寺)라는 절이 있고, 그 주변에 암괴류(巖塊流; Block Stream, 바위 덩어리들)가 발달해 있는데, 바위 덩어리를 물고기와 관련짓는 불교적 신앙에서 유래된 지명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 만어사(萬魚寺) :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만어산에 살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雷雨)와 우박을 내려 4년 동안 일대의 오곡이 결실을 맺지 못하게 되었답니다. 이에 수로왕은 주술(呪術)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불가능하여 결국 예를 갖춰 부처에게 도움을 청하였답니다. 그러자 부처가 여섯 비구와 1만 명의 천인(天人)들을 데리고 와서 독룡과 나찰녀의 항복을 받고 설법수계(說法授戒)하여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서 수로왕이 만어사를 창건하였다고 하지요.

 

  만어사와 관련된 또 다른 전설도 있습니다.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편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승(神僧)을 찾아가서 새로 살 곳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하였답니다. 이에 신승은 용왕의 아들이 길을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인연터라고 일러주었답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니 수많은 물고기 떼가 뒤를 따랐다고 하며, 그가 도중에 머물러 쉰 곳이 바로 만어사 터였다고 합니다. 그 뒤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하였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물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로 굳어 버렸다고 합니다. 현재 절의 미륵전(彌勒殿) 안에는 높이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이며, 이 미륵바위에 기원하면 아기를 낳지 못한 여인이 득남할 수 있다고 합니다.

 

  * 萬魚石(만어석) :  만어사(萬魚寺) 근처에는 무수한 돌덩어리들이 첩첩이 널려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용왕 아들의 뒤를 따랐던 물고기들이 변해서 된 만어석(萬魚石)입니다.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한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하여 재구성)

 

 

  ※ 참고로 <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라는 시집 말미에 실린 시인의 말을 옮겨 봅니다.

 

 사물은 그 본질을 다 드러내지 않았을 때 아름답다. 노출 부족으로 찍은 사진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꽃의 뒤에, 옆에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한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그 세계는 비밀로 가득차 있다. 사진을 찍은 자만이 그것을 보았으리라. 그가 본 풍경을 모르는 편이 꽃을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된다. 노출 부족된 사진 속의 어둠은 오히려 꽃의 진실에 가깝다.

 

  풍경은 무수한 말들을 뿜어낸다. 나는 그것을 받아적는다. 때로 풍경의 침묵이 너무 완강해 그것을 도저히 읽어낼 수 없는 날들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풍경보다 더 깊이, 오래 침묵해야 한다.

 

  나는 내 시를 읽는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다. 순간순간 아득해져서 몇 번이고 시집을 덮었다 읽기를, 그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기를, 그래서 조금, 아주 조금 그들의 마음을 쓰다듬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알 수 없는 광기와 그리움에 시달리던 나날들…… 그럴 때면 삶이, 존재가 견딜 수 없이 너덜너덜해지기도 했다.

  내 안에 너무 많은 것들이 들끓고, 그것에 떠밀려, 그것을 견디느라, 이겨내느라 시를 껴안았다.

 

  이 시집으로부터 나는 이미 조금 떨어져 있는 느낌이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은 내가 가장 가고 싶은 길이었다. 그 길이 저만치서 나를 바라본다.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그 길이.

  길 위에 있는 자, 길 위에 있고자 하는 자들, 영혼이 길 위에 있어야만 안심이 되는 자들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

 

  2000년 5월 조용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