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꿈 대신에 우리는 / 최승자
꿈꾸는 무인도
2015. 6. 29. 12:46
꿈 대신에 우리는
꿈 대신에 우리는 확실한 손을 갖고 싶다.
확실한, 물질적인 손.
아랍의 정의에는 칼!
아메리카의 정의에는 총!
한국의 정의에는 술! 수울?
그러나 확실함은 언제나 우리의 비몽사몽뿐,
철끈처럼 팽팽한 안개 속엔
죽은 헬리콥터들이 떠 있고
정권이 바뀌어도
이제 우린 무덤 속에서 노래하지 않는다.
먼 나라에서 문득문득 편지가 오고,
우리는 읽지 않고 돌려보낸다.
그리고 늦은 밤, 수면을 걱정하며
우리는 책을 덮고
갑자기, 닫혀진 어느 역사책 속에서
누군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하고
우리는 주문을 외우며 잠자리에 든다.
내 주여 이 잔을,
할 수만 있다면
당신 목구멍에 흘려 넣으소서.
- 최승자 <즐거운 日記> (문학과지성사, 1984)
(사진 : 양주 삼숭동, 2015.01.05)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확실한 현실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며 오늘도 한잔의 술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건만,
불면의 밤은 쉬이 치유되지 않는다.
최승자 시인은 그렇게 198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암울한 자화상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1980년대 만의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