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옛길 / 김선우
대관령 옛길
폭설주의보 내린 정초에
대관령 옛길을 오른다
기억의 단층들이 피워올리는
각양각색의 얼음꽃
소나무 가지에서 꽃숭어리 뭉텅 베어
입 속에 털어넣는다, 火酒―
싸아하게 김이 오르고
허파꽈리 익어가는지 숨 멎는다 천천히
뜨거워지는 목구멍 위장 쓸개
십이지장에 고여 있던 눈물이 울컹 올라온다
지독히 뜨거워진다는 건
빙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
붉게 언 산수유 열매 하나
발등에 툭, 떨어진다
때로 환장할 무언가 그리워져
정말 사랑했는지 의심스러워질 적이면
빙화의 대관령 옛길, 아무도
오르려 하지 않는 나의 길을 걷는다
겨울 자작나무 뜨거운 줄기에
맨 처음인 것처럼 가만 입술을 대고
속삭인다, 너도 갈 거니?
- 김선우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창작과비평사, 2000)
(사진 : 강원도 양양, 2015.01.28)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만난 시인은 수수하면서도 앳돼 보이는 시골 소녀 같았습니다. 동그랗고 커다란 눈동자, 말을 할 때마다 살짝 드러나는 보일 듯 말듯한 보조개, 도톰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가녀리고 수줍은 목소리...... 낯섦과 어색함 속에서 시작된 신입생들의 풋풋한 시간은 흘러가고......
차츰 대학 생활에 익숙해질 즈음부터는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강의실보다는 중앙도서관 앞 민주광장이나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점차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뙤약볕 아래에서, 걷어붙인 팔뚝 힘차게 휘두르며...... 군사정권 퇴진을 외치는 거친 구호와 함께 '님을 위한 행진곡'을 처절하게 불러댔습니다.
대열의 앞을 막아서는 전경들의 바리케이드 너머로 무수한 돌멩이들을 날리기도 했지요. 그리고 저녁이 되면 대학 후문 근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그날 잡혀간 동료나 선배들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하고, 군데군데 이 빠진 막걸리잔을 힘차게 부딪치며 매캐한 최루탄 가스에 지쳐버린 심신을 달래곤 했습니다. 젊음의 열정과 애틋한 서정이 담긴 노래를 젓가락 장단에 맞춰 불러젖히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상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벽에 맞서며, 치고, 박고, 대들면서 참으로 치열하고도 힘겹게 4년 동안의 대학 시절을 보낸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졸업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른 1996년, 다시 시인의 이름 석자를 계간지 '창작과 비평' 겨울호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문득, 낯설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그래, 선우 넌 그렇게 될 줄 알았어...... 하는 부러움 섞인 시샘도 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과연 그토록 힘겨웠던 그 시절에 4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보내기는 했을까? 졸업 후...... 누구는 선생으로, 누구는 시인으로...... 서로 다른 삶의 길이 옛 기억마저도 흐려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가 가져다주는 또 다른 인생의 기로에서 잠시 옛날 일들을 추억해 보기도 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20년도 훨씬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문득 사범대학 교육 2호관 앞의 복숭아꽃 무리 지어 활짝 핀 언덕에서, 흩나리는 꽃비에 흠뻑 취해 김치 쪼가리를 안주삼아 막걸리잔 기울이던...... 옛 생각이 오히려 또렷하게 떠오르며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대관령 옛길을 힘겹게 오르며 지금까지도 삶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이제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수수하면서도 앳된 시인의 얼굴이 눈에 보일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