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2
퇴근길, 길가에 핀 꽃을 보다
꿈꾸는 무인도
2015. 5. 24. 00:53
차를 타지 않고 느린 걸음으로 걷다 보면 많은 것들을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묻혀 잘 보이지 않던 작은 꽃송이 하나하나가 강렬한 유혹의 빛을 내뿜으며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치명적인 끌림을 거부할 수 없어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 보건만, 돌아오는 결과는 역시나 아쉬움뿐입니다. 사진을 아무리 많이 찍어도 사진 찍는 사람이 지닌 능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의 깊은 절망을 느끼게 됩니다.
며칠 전 버스에서 얼핏 보았던 길가 붓꽃을 먼저 렌즈에 담다가 그 아래 납작 엎드려 부끄러운 웃음을 흘리는 제비꽃도 발견합니다. 그러다가 그 옆에서 화려한 꽃잎을 자랑하고 있는 패랭이꽃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그만, 홀씨가 절반이 넘게 날아가 버린 민들레 꽃대의 처참한 모습에 시선이 멈추고 맙니다. 생로병사의 순환이라는 자연의 질서는 차치하고서라도, 저렇게 사라져 가는 것들의 모습에선 왠지 모를 진한 슬픔이 묻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삶의 길이 곧 멈춰버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고요함 속으로 가라앉아, 영원한 어둠에 잠겨버릴 모든 사라지는 것들의 위대한 여정이 진한 애잔함으로 다가옵니다.
붓꽃
제비꽃
패랭이꽃
민들레 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