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과 별

으스름달밤의 단상

꿈꾸는 무인도 2015. 5. 3. 10:56

 2015년 5월 2일, 토요일 밤입니다. 낮동안엔 한여름 날씨처럼 계절을 앞서가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더니, 밤이 되자 하늘이 점점 뿌얘지고 음력 열나흘 달은 차츰 본 모습을 잃어 갑니다.

 

 

 달이 완전히 숨어버리기 전에 다급하게 카메라를 꺼내 들고 흐려지는 달의 모습을 담아 봅니다. 짙게 내려앉은 밤공기의 습한 기운이 희뿌연한 달의 모습을 더욱 애잔하게 연출해 내고, 불현듯 온몸을 전율케 하는 진한 감흥이 밀려옵니다.

 

 

 

 이런 날 밤에는 막걸리라도 한잔 하며 여한 없이 달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해 놓고 사진을 찍는 틈틈이 마당 평상 위에 걸터앉아 산나물 무침을 안주삼아 막걸리 잔을 기울입니다. 집 앞 팬션에 자리잡은 도시에서 온 사람들의 왁자한 이야기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시선은 하늘 높이 고정되어 으스름달에 빠져버립니다. 잠시나마 각박하기만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어 설레는 마음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감을 지켜보면서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며 인정하기가 힘들다고 느껴지는 요즘,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끼기도 합니다. 으스름달이 뜬 이 밤, 20대의 젊은 낭만이 가득하던 시절로부터 어언 20여 년이 훌쩍 넘는 동안의 세월의 흔적들을 되새겨 봅니다. 숨가쁘게 달려오기만한 시간의 뒤안길에서 이젠 가끔 앞이 아니라 나를 살펴보는 여유가 필요하지 않나, 스스로의 삶에 대한 위로와 격려도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려온 삶이 나에게 남겨준 것이 무엇인가 되묻고 싶어지기도 합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점점 메말라 가는 감성의 우물을 다시 한가득 채우고 싶어지는 밤입니다. 우리 반 녀석들은 지금 공부 열심히 하고 있나 궁금하기도 합니다. 착하고 예쁜, 그래서 우리 아들내미 딸내미처럼 느껴지는 우리반 아이들이 졸업하는 날까지, 매번 교실에 들어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을 한결같이 느끼고 싶은데...... 쉬운 일은 아닐테지만 그런 작은 소망 하나 으스름달에 의지해 빌어 봅니다.

 

 강원도의 으스름달이 뜬 봄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