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 최영미
꿈꾸는 무인도
2015. 4. 29. 23:52
아도니스를 위한 연가
너의 인생에도
한번쯤
휑한 바람이 불었겠지
바람에 갈대숲이 누울 때처럼
먹구름에 달무리질 때처럼
남자가 여자를 지나간 자리처럼
시리고 아픈 흔적을 남겼을까
너의 몸 골목골목
너의 뼈 굽이굽이
상처가 호수처럼 괴어 있을까
너의 젊은 이마에도
언젠가
노을이 꽃잎처럼 스러지겠지
그러면 그때 그대와 나
골목골목 굽이굽이
상처를 섞고 흔적을 비벼
너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헤엄치고프다, 사랑하고프다
-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사진 :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친구인 duta1012의 사진을 무단으로 도용함. 강원도 양구 두타연의 햇무리, 2013.06.16)
아도니스(Adoni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으로, 미의 여신(女神)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사랑을 받았으나, 사냥을 하다가 멧돼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그가 죽으면서 흘린 피에서 아네모네꽃이, 여신의 눈물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신화는 전합니다.
요즘 며칠 최영미 시에 빠져 지냈습니다. 21년 전, 그러니까 1994년 3월 25일 초판 발행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뒤적거리며 옛 정감을 느껴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봄이 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놓아주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