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선운사에서 / 최영미

꿈꾸는 무인도 2015. 4. 29. 00:42

 

   선운사에서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 1994)

 

  (사진 : 양주 삼숭동, 2014.04.02)

 

 젊은 시인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그 표현력에 반해 한번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시입니다. 군에서 제대하기 전, 신문에 실린 이 시를 보고는 가슴이 먹먹해져서 한동안 정신줄을 놓아버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간결한 시어로 특별한 수사나 비유도 없이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만들어낼 줄 아는 시인의 역량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이 시를 읽을 때면 처음 접했을 때의 그 먹먹한 느낌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어서일까요. 나이를 먹을수록 감성은 점점 메말라 간다는데...... 어쭙짢은 감성 비슷한 그 무엇이 아직까지 조금은 남아있나 보네...... 씁쓸한 위로를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