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 두산(2014.10.11, 잠실) #03 감독의 약속
5회가 끝나고 야구장을 정비하는 시간입니다. 양팀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 몸을 풉니다. 벤치 클리어링 때의 삭막했던 분위기와는 달리 일부 선수들은 상대팀 선수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용담을 자랑이라도 하는 걸까요? 아무튼 보기는 좋습니다.
작년 LG의 숨은 영웅들 중의 한 명인 문선재 선수의 모습도 보입니다. 올 시즌 2군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1군 무대에서 보니 반가움이 느껴집니다.
오지환 선수의 등에 업힌 선수는 해체가 예정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LG로 이적한 황목치승입니다. 한때는 야구를 포기하고 미용사가 되려고까지 했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고양 원더스에 입단했다가 늦은 나이에 프로야구 1군 경기에까지 나서게 된 입지전적인 선수입니다.
6회말 LG는 우완 윤지웅으로 투수를 교체했으나 두산의 6번타자 오재원에게 내야안타를 맞고 정찬헌으로 다시 교체합니다. 바뀐 투수 정찬헌이 두산의 대타 김재환에게 병살타를 유도합니다. 이어서 두산의 8번타자 김재호를 2루수 플라이로 가볍게 처리합니다.
7회 말 2아웃에서 LG는 다시 한 번 투수를 교체합니다. 이번엔 신재웅입니다. 좌완임에도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져 관중들을 매료시킵니다. 좌완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야구 지도자들의 말이 떠오릅니다. 두산 2번타자 최주환을 2루수 땅볼 아웃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종료합니다. 점수는 여전히 4대 2로 LG가 앞서 있습니다.
그리고 운명의 8회입니다. 두산 마운드는 7회부터 정재훈이 지키고 있습니다. 6번타자 이병규(9번)가 9구를 고른 끝에 볼넷, 대주자 문선재의 도루, 7번타자 손주인의 희생번트 때 대주자 문선재가 3루까지 진루, 8번타자 최경철 안타로 3루주자 문선재 홈인, 9번타자 오지환의 안타로 주자 1, 3루, 1번타자 정성훈은 스나이더로 교체되었는데 볼넷으로 주자 만루, 2번타자 박경수는 바뀐 투수 노경은을 공략하여 좌익수 앞 안타, 이때 3루 주자 최경철과 2루 주자 오지환 홈인, 3번타자 박용택의 우익수 앞 안타 때 2루주자 스나이더 홈인, 4번타자 이병규(7번)의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3루주자 박경수 홈인, 5번타자 이진영의 좌익수 앞 안타로 주자 1, 2루, 이 때 1루 대주자로 임재철 기용, 6번타자 문선재의 중견수 앞 안타로 박용택 홈인, 임재철은 3루까지 진루, 7번타자 손주인의 타석 때 폭투가 나와 3루주자 임재철은 홈인하고 1루주자 문선재는 2루까지 진루, 이어서 손주인의 중견수 오른쪽 안타로 2루주자 문선재 홈인, 1루주자 손주인은 대주자 김영관으로 교체, 8번타자 대타 최승준은 바뀐 투수 김명성을 상대로 비거리 130m짜리 좌익수 뒤 투런 홈런포를 쏘아 올립니다. 이어진 9번타자 오지환은 2루수 플라이로 아웃됩니다. LG는 8회에만 무려 10득점을 하며 빅이닝을 만듭니다.
우완 거포 최승준이 홈런을 친 후 베이스를 도는 모습입니다.
홈런을 허용한 두산 포수 김명성의 쓸쓸한 모습과 대비되는 최승준의 모습이 늠름하기만 합니다. 그나저나 김명성 투수는 앞으로 이름에 걸맞는 명성을 쌓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 때, 양상문 감독의 약속이 지켜집니다. 양상문 감독은 올 시즌 초, 갑자스런 김기태 감독의 사퇴로 시즌 중에 새롭게 LG 감독으로 부임한 후, 5할 승률에 이르기 전까지는 홈런 등의 상황에서 선수들과 세레모니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바로 전 경기에서 승률 5할을 달성한 후 드디어 첫 홈런이 터진 것입니다. 양상문 감독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최승준을 맞이하며 격려해 줍니다. 어떻게 보면 감독 자신과 팬들, 그리고 선수들에 대한 독한(?) 약속이었던 셈인데 이제서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동안 양상문 감독은 선수들이 홈런을 치거나 득점을 올리는 상황에서도, 선수 시절 '헐크'로 불리던 모 구단의 감독처럼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거나, 아니면 입가에 미소를 짓는 등의 최소한의 표정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표정한 모습으로 다음 상황에 대한 구상을 하며 코치진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이 화면에 많이 잡혔던 것입니다. 그러나 5할 승률을 달성한 이젠 마음껏 선수들을 격려할 수 있는 명분도 생기고 스스로와 팬들에 대한 약속을 지킬 조건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무튼 대단한 감독입니다. 독한 감독입니다. 본인의 말대로 독한 야구를 하겠다는 약속을 실천한 것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최승준 선수의 등을 토닥여주기까지 합니다.
최승준은 캡틴 이진영의 품에 안깁니다.
올시즌 전 구단에 휘몰아치는 타고투저의 광풍 속에서도 유독 LG는 팀 타율 최하위를 기록할 정도로 방망이가 약한 팀인데, 이날 두산을 상대로 한풀이라도 하듯 한 이닝에 10득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수확합니다. 홈런 하나를 포함하여 안타 8개와 볼넷 2개, 폭투 하나로 대거 10점을 쓸어담습니다.
LG 투윈스 팬들의 응원 열기가 하늘을 찌릅니다.
8회가 끝나기도 전부터
1루 내야의 두산 팬들은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합니다.
9회초에 1번타자 스나이더는 1루 땅볼로
아웃되었지만, 2번타자 대타 황목치승이 우익수 오른쪽 3루타를 작렬하고, 3번타자 대타 정의윤이 좌익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더 보탭니다. 이어서 4번타자 대타 김용의는 2루수 땅볼로 아웃되며 LG는 오늘의 공격을 마무리합니다.
9회말 두산의 마지막 공격입니다. 양상문 감독은 독하게도 김선우 투수를 올립니다. 얄궂게도 김선우는 작년까지 두산의 선수였는데 말이지요. 어떻게 보면 다소 잔인할 수도 있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바로 야구의 묘미가 아닐까 합니다. 김선우는 삼자범퇴로 경기를 끝냅니다. 오늘 경기의 승리는 우규민, 홀드는 정찬헌과 신재웅, 그리고 패전은 두산 마야의 몫이 됩니다.
이제 시즌 종료까지 3경기가 남았습니다. 집중력 있게 경기에 임해 5할 승률을 유지한 채 정정당당하게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여, 유광 점퍼를 입은 팬들의 함성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후일담>
포스트 시즌 진출 여부가 판가름나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LG는 롯데에 패했지만, SK도 넥센에 패하면서 LG는 극적으로 4강에 합류합니다. 꼴찌 팀으로 5할 승률 -16까지 떨어졌던 팀이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리고...... 10월 19일에 치러진 준 플레이오프(5전 3선승제) 1차전에서 LG는 NC에 대승(13:4)을 거두며 1승을 먼저 수확합니다. 선수들의 고른 활약이 있었지만 특히 늦깎이 포수 최경철의 3점 홈런이 두드러졌습니다. 다음 날 예정된 2차전은 우천으로 순연되고 맙니다. 그 다음날도 우천으로 순연되고, 10월 22일에 치러진 2차전에서는 4:2로 LG가 승리합니다. 10월 24일, 장소를 옮겨 잠실에서 치러진 3차전에서는 LG는 NC에게 3:4로 패하지만, 10월 25일 치러진 4차전에서 11:3으로 대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2년 연속으로 진출합니다.
10월 27일에 펼쳐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선 3:6으로 넥센에게 패하고, 10월 28일에 펼쳐진 2차전에선 9:2로 대승을 합니다. 10월 30일 잠실에서 진행된 3차전에서 2:6으로 패하고, 10월의 마지막 날 펼쳐진 4차전에서도 2:12로 대패하며 올시즌 LG Twins의 가을야구는 마무리됩니다.
꼴찌 팀에서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플레이오프까지 치르게 된 LG의 올 시즌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음에 분명합니다. 비록 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한국시리즈 진출이 무산되긴 했지만, 팬들에게 많은 희망과 용기를 준 2014년이었습니다. 내년에도 더욱 화려한 모습으로 팬들에게 즐거움을 주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