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에 가면 / 나희덕
겨울 산에 가면
겨울 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 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리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 눈물이 흐른다.
잘릴 때 쏟은 톱밥 가루는 지금도
마른 껍질 속에 흩어져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맺혀 빛나고,
그 옆으로는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것들이
뿌리박힌 곳에서 자라고 있다.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가 있다.
베어진 나무의 나이테를 어머니에 비유하는 나희덕의 시이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날 산에 오른 화자는 나무의 밑둥(표준어:밑동)에 쌓인 눈을 쓸어보고, 거기에 드러난 나이테를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자가 바라보는 나이테가 오히려 화자를 바라보는 주객전도(主客顚到)의 발상을 통해, 화자를 어린 자식으로 여기는 어미 나무의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식을 대하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모습들, 고단했던 삶의 흔적들, 자식의 앞길을 걱정하며 흘리는 어머니의 보석 같은 눈물(송진)을 나이테의 형상에 비유하여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무를 베어낼 때 생겨난 톱밥을 해산의 고통으로 흘린 어머니의 땀으로 묘사하고, 바로 그 땀이 곁에서 자라는 어린 나무의 생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것으로 인식하여 끝을 알 수 없는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산 주인의 필요에 의해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벌목의 현장에서 생뚱맞게도 어머니의 사랑을 떠올린 시인의 발상과 비유가 독특하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어린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나 결국에는 하늘을 온통 뒤덮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니, 세상 모든 어머니의 마음은 다 그렇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