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得漁忘筌(득어망전)

꿈꾸는 무인도 2012. 9. 14. 15:53

 筌者所以在魚(전자소이재어)  통발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다.

 得魚而忘筌(득어이망전)  물고기를 잡으면 통발은 버려야 한다.           

 蹄者所以在兎(제자소이재토)  올가미는 토끼를 잡기 위한 것이다.              

 得兎而忘蹄(득토이망체)  토끼를 잡으면 올가미를 버려야 한다.           

 言者所以在意(언자소이재의)  말이라는 것은 뜻을 전하기 위한 것이다.        

 得意而忘言(득의이망언)  뜻을 잡으면 말은 버려야 한다.   

 吾安得夫忘言之人(오안득부망언지인)  나는 언제 말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을 만나       

 而與之言哉(이여지언재)  더불어 말을 해볼 수 있을 것인가? 

 

 <장자(莊子)> '외물(外物)' 편에 나오는 구절인데, <금강경(金剛經)>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以是義故, 如來常說 : 汝等比丘, 知我設法如筏喩者, 法尙應捨. 何況非法!

  (이시의고, 여래상설 : 여등비구, 지아설법여벌유자, 법상응사. 하황비법!)

  [이러한 뜻의 까닭으로, 여래는 항상 말하였다. 너희들 비구들아, 나의 설법이 뗏목의 비유와 같음을 아는 자들은 법조차 마땅히 버려야 하거늘, 하물며 법이 아님에 있어서랴!] (김용옥 역)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방편(方便)인 뗏목[筏]으로서의 법(法)조차도 결국은 버려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불가(佛家)의 가르침은 그야말로 공(空)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장자(莊子 주앙쯔)와 싣달타, 중국과 인도라는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시간대는 비슷하다고 함) 두 인물이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깨달음에 이르고 말겠다는 의지조차 내려놓고, 마음을 비워야겠다는 생각조차 내려놓고, 심지어는 그런 생각에 대한 생각조차 또 하나의 집착으로 인식하여 내려놓으라는 싣달타의 말씀마저도 내려놓고...... 아이고,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인(聖人)인가 봅니다. 

 

  그냥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때론 그 마음이라는 놈 때문에 힘들어질지라도, 그것을 비우기가 어려워서 괴로울지라도, 그 모든 것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를 수 있는 먼 훗날이 오지 않을까요? 언젠가는 말이지요. 그렇지 않을까요?

 

 

   [사진 : 태안 천리포수목원의 아킬레아 밀레폴리움(Achillea millefolium),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