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1 / 김선우

꿈꾸는 무인도 2022. 11. 26. 13:04

    일반화된 순응의 체제 1

     - 아무의 제국, 그 심드렁한 통치술

 

 

  날마다 자라난다 광활한 용량만큼

  빠른 속도로 이인칭이 사라진 자리에

  아무와 시간을 보내는 아무들

 

  아무랑 놀고

  아무에 묻고

  아무에게 팔고

  아무로부터 사고

  아무를 베낀다

  아주 바쁘게, 아주 뜨겁게

 

  산책자도 없는 산책자들의 도시

  아무가 바삐 오간다

  아무를 손에 들고

  아무에게 속삭이며

  몸속에 심장이 없다는 걸 티 내지 않는다

  종종 두뇌가 실종된다는 것도

 

  오늘이 사라지는 속도만큼

  아무의 영토가 커지고

  아무의 밤은 날마다 융성하나니

  --- 뭘 더 바라겠어요

      잠시 사라지는 허기면 족하죠

 

  아무 속에선 아무도 외롭지 않다

  아무는 항상 바쁘기에

  아무에게 불만을 가질 여유가 없다

  아무랑 즐겁기에

  아무에게 투정할 필요도 없다

  

  어둡게 삼켜지는 아무의 시간

  차갑게 식어가는 아무의 온도

  밝게 빛나는 아무의 우주

  뜨겁게 번성하는 아무의 자연

 

  아무는 먹고

  아무는 버리고

  아무는 뿌리 뽑고

  아무는 살해하고

  아무는 외면한다

  아주 배부른 채, 아주 한가롭게

 

   - 김선우 <내 따스한 유령들> (창비, 2022)

 

 

 (사진 : 양주, 2021.12.12.)

 

  익명의 세계에서는 아무나 아무가 되고, 아무가 아닌 것도 아무가 되고······

  나도 아무가 되고, 너도 아무가 될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무나 아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