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학교 운동장 옆 절개지 옹벽에 2018학년도 수능 응원 플래카드가 걸렸습니다. 장석주 시인의 '대추 한 알'을 인용했네요. 2005년 애지에서 펴낸 <붉디 붉은 호랑이>라는 시집에 실린 작품입니다. 그래요. 저절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우리 반 녀석들도 그동안 참 열심히 공부해 왔지만, 앞으로 남은 57일이라는 시간을 끝까지 잘 활용해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같은 범인(凡人)들은 손에 들고 있는 열매 한 알을 놓고 그저 맛있게 먹을 줄만 알지, 그 열매가 손에 들어오기까지 농부의 무수한 손길은 물론 열매 스스로 견디어 온 숱한 인고의 시간이 있었다는 사실을 쉽게 인지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시인은 섬세한 시선으로 열매에 스며든 태풍과 천둥과 벼락, 그리고 무서리와 땡볕과 초승달을 포착하여 붉은 대추 한 알의 의미를 아름다운 언어로 형상화하였지요.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
저게 혼자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 장석주 <붉디 붉은 호랑이> (애지, 2005)
3반 친구들아......
학교 뒷산의 산빛이 점점 옅어지는구나.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대추 한 알이 그래 왔듯, 붉은 사과 한 알이 그래 왔듯......
그렇게 견디길 바란다.
그리하여
붉은 빛 선명한 열매로 익어
서른 다섯 개의 환한 등불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