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사의 여름 #02 부도밭
8월의 일요일 오후 봉선사 일주문에 들어섭니다.
일주문 현판이 한글로 되어있네요. 이는 아마 운허(耘虛)[1892-1980, 속명은 이학수(李學洙), 본관은 전주(全州), 춘원 이광수의 6촌, 법호가 운허(耘虛)이며 법명은 용하(龍夏)] 스님의 영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1957년 7월부터 불경을 번역하기 시작하여 평생의 사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1961년에는 국내 최초로 <불교사전>을 편찬하였고, 1964년에는 동국대학교 내에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이 되었으며, 열반에 드는 날까지 대장경(大藏經)을 한글로 번역하는 사업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고 하지요.
교종본찰봉선사(敎宗本刹奉先寺)...... 일주문을 들어와서 주차장 방향으로 본 모습입니다. 봉선사는 교종의 본찰이라고 합니다.
일주문 바로 우측에는 다른 부도탑들과 달리 외로이 홀로 떨어져 있는 아담한 부도탑이 있어 눈길을 끕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서 몇 걸음 걷다 보면 왼쪽으로는 연지(蓮池)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으로는 부도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부도밭 가운데 쯤에 불경의 한글 번역 사업에 열정을 쏟은 운허 큰스님[耘虛堂大宗師]의 부도탑이 자리하고 있네요. 그는 1970년에 이곳 봉선사의 주지를 지냈으며, 1980년에 봉선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하지요.
운허 스님 부도탑 바로 왼쪽에는 1981년에 조성된 '운허당 대종사 추모비(耘虛堂大宗師追慕碑)'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운허 스님 부도탑 우측으로는 1994년에 조성된 '만허당 대선사 추모비(萬虛堂大禪師追慕碑)'가 있지요. 귀부(龜趺 - 거북 모양 비석 받침돌)의 거북 머리가 납작하게 눌린 모양이라 재미있습니다.
만허 스님 추모비 옆에는 1935년에 입적하였지만 1997년에 조성된 '지월당 순재화상 건국유공행적비(沚月堂淳載和尙建國有功行蹟碑)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우측에는 1993년에 봉선사 주지 소임을 맡았으며, 2000년에 입적하신 운경 대선사 자광(雲鏡大禪師慈光) 스님의 부도탑도 있고......
또 바로 옆에는 '봉선사 조실 운경당 기홍 큰스님 추모비(奉先寺祖室雲鏡堂基弘큰스님追慕碑)'가 모셔져 있는데, 조금 전 부도탑에서는 '대선사(大禪師)'라 칭했지만 그의 추모비에선 '큰스님'이라는 한글 표현을 사용한 점이 눈에 띕니다.
운경 스님 추모비의 비석 덮개가 화려합니다. 비석 덮개에선 '대선사'라는 표현을 했군요.
운경 스님 추모비의 귀부가 웅장합니다.
운허당 대종사의 추모비를 필두로 그 뒤로 부도탑과 추모비들이 보이고......
이런...... 봉선사 부도밭에는는 춘원 이광수 기념비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광수는 1917년 1월 1일부터 최초의 근대적 장편소설인 '무정(無情)'을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하여 우리 소설문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기도 했으며, 이후 상해로 건너가 안창호와 여운형을 만나는 등 임시정부의 일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는데 노력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7년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반 년 만에 병보석되었는데, 이때부터 친일 행위로 기울어져 1939년에는 친일 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朝鮮文人協會)'의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로 창씨개명하고 본격적으로 친일행위를 하게 되었지요.
광복 후 6촌 형제인 운허 스님의 도움으로 이곳 봉선사에서 얼마간 지냈다고 하며, 1949년 2월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3월에 병보석으로 석방된 후 결국 불기소 처분되었지요. 그러나 한국 전쟁 때 납북된 후 생사불명이었으나 결국 1950년 10월 25일 만포(滿浦)에서 병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후 주요한 등 동료 문인들의 요청과 운허 스님의 동의로 봉선사에 그의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춘원의 기념비 제작을 주도한 주요한은 1919년 2월 <창조> 창간호에 '불노리(불놀이)'라는 시를 발표하였지요. 자유시의 효시로 평가받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주요한 역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며, 1960년 장면 내각에서 장관까지 지내기도 했지요. 오늘은 8월 13일이고 이틀 후면 광복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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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 부도밭을 지나 봉선사 경내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