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月은 갈아엎는 달 / 신동엽
4月은 갈아엎는 달
내 고향은
강 언덕에 있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
지금도
흰 물 내려다보이는 언덕
무너진 토방가선
시퍼런 풀줄기 우그려넣고 있을
아, 죄 없이 눈만 큰 어린것들.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山川은 껍질을 찢고
속잎은 돋아나는데,
四月이 오면
내 가슴에도 속잎은 돋아나고 있는데,
우리네 祖國(조국)에도
어느 머언 心底(심저), 분명
새로운 속잎은 돋아오고 있는데,
미치고 싶었다.
四月이 오면
곰나루서 피 터진 東學(동학)의 함성,
光化門(광화문)서 목 터진 四月의 勝利(승리)여.
江山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출렁이는 네 가슴만 남겨놓고, 갈아엎었으면
이 균스러운 부패와 享樂(향락)의 不夜城(불야성) 갈아엎었으면
갈아엎은 漢江沿岸(한강연안)에다
보리를 뿌리면
비단처럼 물결칠, 아 푸른 보리밭.
강산을 덮어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는데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
- 발표 : 조선일보(1966년 4월 3일)
- 신동엽 <申東曄全集(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사진 : 양주 천보산, 2013.04.27)
신동엽 시인은 1930년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고 하지요. 내 한 몸 먹고살기도 힘겨웠던 그 시절,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은 성장기의 소년에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흰 물'(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무너진 토방'에서 '시퍼런 풀줄기'만 욱여넣듯 억지로 삼키며 목숨을 연명해야 하는 고난의 삶이었을 것입니다. 풀뿌리를 삶아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힘겹게 보릿고개를 넘기며 살아온 삶 자체가 '미치고 싶'을만큼 괴롭기만 했겠지요. 열심히 일을 하여도 늘 배고프고 고달프기만 한 삶은 정말 미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난(至難)했던 성장 과정을 통해 시인의 '심저(心底-마음 밑바닥)'에서부터 형성된 '새로운 속잎'과도 같은 뿌리 깊은 울분은 자연스럽게 1894년[갑오년(甲午年)]의 '곰나루[웅진(熊津)-공주의 옛 이름]에 울려 퍼지던 농민들의 뜨거운 함성으로 연결됩니다. 또한 1960년 4월 19일에 '광화문(光化門)서 목 터진 四月의 승리(勝利)'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민중들을 억압하며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부정한 세력들을 마치 병균과도 같은 존재로 여기게 됩니다. 더 나아가 부정한 세력들이 일군 '부패와 享樂(향락)의 不夜城(불야성)'을 '갈아엎'어 버리고, 그 자리에 '비단처럼 물결칠' 자유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푸른 보리밭'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꿈꾸게 되는 것이지요. 해마다 4월이 되면 '강산을 덮'을 정도로 '화창한 진달래는 피어나'지만, 4·19는 미완의 혁명이 되어 시인의 마음을 계속해서 아프게 하고 분노하게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여전히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평화로운 '그날'을 계속해서 꿈꾸게 되는 것입니다. 급기야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시인은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갈아엎는 달 / 그날이 오기까지는, 四月은 일어서는 달'로 인식하며, 민중의 각성과 실천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2017년 4월입니다. 신동엽 시인은 1969년 4월에 4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마도 그는 해마다 4월이 되면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붉게 물들이는 화사한 진달래로 다시 피어날 테지요. 그런데, 그가 그토록 꿈꿨던 '그날'이 과연 오기는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