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山에 언덕에 / 신동엽

꿈꾸는 무인도 2017. 4. 10. 22:40

 

    山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山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 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行人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人情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 신동엽 <申東曄全集(신동엽전집)> (창작과비평사, 1975)

 

 

  (사진 : 양주 천보산, 2013.04.27)

 

 다시 4월이 되었습니다. 4월이 되면 으레 신동엽(1930.08.18~1969.04.07) 시인이 떠오릅니다. 그는 뜨거운 8월에 태어났지만 진달래꽃 붉게 타오르는 4월에 생을 마감하였지요. 이 작품은 그의 첫 시집인 <阿斯女(아사녀)>(문학사, 1963)에 실려 있습니다. 시인은 4·19 때 숭고하게 희생된 젊은 넋들을 기리며, 그들이 환생하여 이 땅의 산과 언덕과 들에서 '화사한 꽃'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그는 설화 속 인물인 '아사달'과 '아사녀'를 통해 순수성의 회복을 염원하는 작품을 여럿 남겼지요. 그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는 <껍데기는 가라>(1967)에서 '사월'(4·19 혁명)과 '동학년'(동학 농민혁명)'의 숭고한 의미를 되새기며 '중립의 초례청'에서 맞절하는 '아사달, 아사녀'와 같은 순수한 '알맹이'만 남고, 온갖 불의함으로 상징되는 '껍데기'가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2014년의 4월에는 304명의 억울한 희생자들과 함께 세월호가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2017년의 4월에는 가라앉은 세월호를 인양하여 뭍으로 옮기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신동엽 시인은 50년 전에 '껍데기는 가라'라고 부르짖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에는 여전히 '껍데기'들이 넘쳐나고, 숱한 '그리운 그'들의 희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우리는 그래서 여전히 '들에 언덕에 피어날' '그의 영혼'을 기리며, '맑은 그 숨결'이 '山에 언덕에' 피어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