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풍경

평상이 있는 국숫집 / 문태준

꿈꾸는 무인도 2017. 4. 9. 23:49

     평상이 있는 국숫집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 갔다

  붐비는 국숫집은 삼거리 슈퍼 같다

  평상에 마주 앉은 사람들

  세월 넘어온 친정 오빠를 서로 만난 것 같다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손이 손을 잡는 말

  눈이 눈을 쓸어 주는 말

  병실에서 온 사람도 있다

  식당 일을 손 놓고 온 사람도 있다

  사람들은 평상에만 마주 앉아도

  마주 앉은 사람보다 먼저 더 서럽다

  세상에 이런 짧은 말이 있어서

  세상에 이런 깊은 말이 있어서

  국수가 찬물에 헹궈져 건져 올려지는 동안

  쯧쯧쯧쯧 쯧쯧쯧쯧

  큰 푸조나무 아래 우리는

  모처럼 평상에 마주 앉아서

 

         - 문태준 <가재미> (문학과지성사, 2006)

 

 (사진 : 양주 삼숭동, 2014.04.23)

 

 양주 삼숭동에는 오래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나무의 안내 표지판에는 몇 년째 나무의 수령이 400년으로 표기되어 있지요. 그 옆에는 포장마차와 냉면집이 이어져 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늙은 느티나무 아래에까지 냉면집 평상이 설치되고, 간혹 길을 걷다 보면 평상에 앉아 냉면을 드시는 동네 어르신들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평상'이라는 자리가 모든 것을 말해 주지요. 혹은 평상 위에 둥그렇게 앉아 냉면을 먹거나, 혹은 평상 아래로 다리를 내리고 격의 없이 자유로운 담소를 나누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솔직한 이야기는 말을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여 공감을 이끌어 내고, 함께 웃고 함께 슬퍼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지요. 주방에서 냉면을 헹구는 소리인 '쯧쯧쯧쯧'이라는 의성어는 가게에서 조금 떨어진 평상에까지 전달되진 않지만, 평상에 함께 앉아 있는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의 표현은 끊임없이 계속됩니다. 타인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어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은 역시 '평상'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겠지요. 때론 길을 가는 나그네와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그러한 상황은 이어집니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낯설어하다가도 함께 냉면을 먹으면서 주고받는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라는 동질감이 형성되는 법이지요.

 그러나 어쩌면 다 옛날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시대가 아니라, 이웃이 할인마트에서 진행하는 사소한 경품 행사에 당첨된 것마저도 배 아파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니, 이웃이 그런 행운을 얻은 사실 자체를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이겠지요.

 타인의 아픔을 함께 아파할 줄 아는 따뜻한 인정이 그리워지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