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저편 / 류근
세월 저편
(추억의 배후는 고단한 것 흘러간 안개도 불러 모으면 다시 상처가 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늘 바라보는 것)
바람은 아무거나 흔들고 지나간다
여름 건너 하루해가 저물기 전에
염소 떼 몰고 오는 하늘 뒤로 희미한 낮달
소금 장수 맴돌다 가는 냇물 곁에서
오지 않는 미래의 정거장들을
그리워하였다
얼마나 먼 길을 길 끝에 부려두고
바람은 다시 신작로 끝으로 달려가는 것인지
만삭의 하늘이 능선 끝에
제 내부의 붉은 어둠을 쏟아내는 시간까지
나 한 번 흘러가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그 먼 강의 배후까지를
의심하였다 의심할 때마다
계절이 바뀌어 그 이듬의 나뭇가지
젖은 손끝에 별들이 저무는 지평까지 나는 자라고
풍찬노숙의 세월을 따라
굽은 길들이 반짝이며 흘러갔다
(어디까지 흘러가면 아버지 없이 눈부신 저 무화과 나무의 나라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흘러가면 내가 아버지를 낳아 종려나무 끝까지 키울 수 있을까)
세상에 남겨진 내가 너무 무거웠으므로
때로 불붙는 집 쪽에서 걸어 나오는
붉은 짐승을 꿈을 신열처럼 따라가고
오랜
불륜과도 같은 세월 뒤로 손금이 자랐다
아주 못 쓰게 된 헝겊 조각처럼
사소한 상처 하나 가릴 수 없는 세월이
단층도 없이 흘러가 쌓였다
이쯤에서 그걸 바라본다
황혼 건너
저 장대비 나날의 세월 저편
- 류근 <어떻게든 이별> (문학과지성사, 2016)
(사진 : 파주 적성면 두지리, 2012.08.26)
'세상에 남겨진 내가 너무 무거웠으므로' '불륜과도 같은 세월 뒤로 손금'만이 점점 거칠게 자라는 상황에 처한 힘겨운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하여 '내가 아버지를 낳아 종려나무 끝까지' 키워서 가장의 자리를 아버지에게 양보하고 싶을 정도로 화자는 삶에 지쳐 있지요. 어떻게 보면 주제 면에서 상당한 중량감을 느낄 수 있는 이 시는, 첫 번째 시집부터 줄곧 이어져 온 '상처'받고 괴로워하며 '술'을 마시고, 그 상처와의 '이별'을 모색하는 시편들의 본류에서 잠시 비켜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칫 통속적인 분위기에 빠질 위험에서 슬쩍 벗어나게 해 준다고나 할까요?
아, 개인적인 소견으로 4연의 '붉은 짐승을 꿈을'이라는 대목이 조금 마음에 걸리는데요, 혹여나 원래 시인이 '붉은 짐승의 꿈을'이라고 표현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보기도 했습니다. '붉은 짐승'과 '꿈'을 동시에 따라간다는 의미라기보다는 '붉은 짐승이 등장하는 꿈'을 따라간다고 보는 것이 조금 수월하게 이해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작품의 가치가 훼손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원작의 표현을 함부로 바꿀 수가 없기에 시집 초판본에 실린 대로 옮겨 보았습니다.